2021. 8. 9. 11:30ㆍFootball
지난 3월 15일 올라온 디애슬레틱 기사 번역. 원문은 사이먼 휴즈 기자.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은 없지만 곧 떠나게 될 것 같아 아쉽고 고마운 선수. 이렇게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다.
1970년대 초, 핑크 플로이드는 싱글앨범 <Fearless>에 사용할 음원을 샘플링하기 위해 안필드 현장에서 <YNWA> 떼창을 녹음해 갔다. 이 밴드의 인기가 머지사이드 전역에서 치솟게 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지난주 리버풀의 한 거리예술가는 핑크 플로이드가 그려진 벽화에 붉은 페인트로 나다니엘 필립스의 이름을 뒤덮었는데, 그 바로 아래에는 핑크 플로이드가 낸 가장 유명한 앨범의 타이틀이 있었다. 'The Wall'.
이 그래피티는 곧 화제를 모으며 리버풀 전역을 뒤덮었다. 입소문이 난 또다른 그래피티는 AC 밀란이 '왕조'를 건설했던 시대의 유니폼에 가져다 붙인 필립스의 얼굴을 담고 있었다. 필립스에게 붙여진 또다른 별명인 '볼튼 바레시'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라이프치히를 한 챔피언스 리그 데뷔 경기에서 필립스가 보여준 활약을 칭찬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었다.
어떤 축구 팬이든, 위기의 시기가 될 때마다 영웅처럼 떠오르는 필립스 같은 선수들에게 이끌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필립스는 작년 여름 스완지 시티로의 이적을 위한 개인합의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지만 그 이적은 성사되지 못했다. 리버풀에 잔류하게 된 필립스는 지난 9월까지, 10대 선수 빌리 쿠메티오에게도 밀렸던 1군의 여섯 번째 옵션의 센터백이었다. 터무니없는 부상 악령이 없었더라면 필립스는 1군 경기에 모습을 드러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 그가 보여준 활약은 이번 시즌 출전한 아홉 번의 경기와도 똑같은,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필립스는 리버풀이 홈에서 브라이튼과 풀럼을 상대로 연달아 패배한 경기에서도 출전했지만 팀의 역적이라는 볼멘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안필드 연패를 기록하기 전, 웨스트햄을 상대로 치른 두 경기에서 필립스는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승점 3점을 챙긴 토트넘과의 경기에서도 하프타임 교체로 출전하며 밥값은 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챔피언스 리그 16강은 다름아닌 필립스의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이었다. 이 경기는 파비뉴가 간만에 센터백이 아닌 중원에서 필립스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첫 경기였으며, 긴 팔다리로 상대의 공격을 모두 끊어주는 파비뉴를 앞에 두고서는 어떤 수비수라도 훨씬 수월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필립스는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았다. 머리의 상처를 덮기 위한 검은 붕대가 필요했지만, 공중볼에 작선이라도 된 양 달려드는 그 이마에 상처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했다. 리버풀이 달성한 클린시트에 있어 필립스의 공헌은 상당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은 자신의 선수를 과장되게 칭찬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심리전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다. 클롭은 필립스를 '공중의 괴물'이라고 칭찬한 것은 선수의 자신감을 독려하기 위한 게 아니라 정말 사실이라 그렇다고 말했다. 필립스의 커리어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러니까 'UCL 출전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어도 클롭이 칭찬한 선수로 불려지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필립스가 이만큼 많은 기회를 얻지 못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필립스는 리버풀을 위해 헌신하고 있고, 아마 다음 달 열릴 8강전에서도 선발로 뛰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임대생활을 하던 재작년 12월 중순, 필립스의 전화기는 클롭이 건 전화로 울리기 시작했다. 통화에서 클롭은 1군 로테이션을 돌리기로 결정했으니 에버튼을 상대로 한 FA컵 3라운드에 뛰기 위해 잠시 안필드로 돌아올 수 있는지 물었다. 필립스는 이미 독일에 정착했지만 "문제 없다"고 답한 뒤, 리버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운 다음 다시 독일로 돌아갔다.
리버풀에서 필립스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필립스의 까다롭지 않은 태도는 피치 위에서 헌신하는 그의 투지와 동떨어져있지 않다. 선수의 가족들은 필립스가 현대의 프로축구 선수들에 대한 나쁜 고정관념과 한참 멀리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선수들에게는 프로 경험이 있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대개 든든하게 여겨지는데, 그의 아버지 지미 필립스는 볼튼 원더러스에서 35살이 될 때까지 400경기 이상을 출전한 레전드다.
지미 필립스는 볼튼 샤플레스에서 태어났지만 가족의 연고지는 버켄헤드의 머지사이드에 가까웠다. 2017년 나(기자 본인인 사이먼 휴즈)는 필립스 시니어를 인터뷰하며 "어머니는 격주 토요일마다 축구 때문에 사라지는 나에게 진절머리를 내며 시즌티켓을 불태웠다"는 회고를 들은 적 있다. 그는 그만큼 열정적인 '콥'으로 성장했다. 볼튼에서 지미의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동안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지미는 9살 때, 번튼 파크에 처음으로 입장하며 볼튼의 팬이 되었다. 지미는 모스 은행에서 공부했고, 그 학교에서는 열네 살짜리 청소년들이 여름방학 기간동안 볼튼 유스와 함께 훈련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곧 지미는 훈련장에 초대받은 네 명의 행운아 무리 중 하나가 되었다.
1978년 볼튼이 1부리그로 승격하는 현장에 지미 역시 있었다. 볼튼 셔츠를 입은 그에게 롤모델은 리버풀의 전설적인 윙어인 피터 톰슨이었다. 16살이 된 지미는 구단에서 프로계약을 맺으며 경기장에서 800미터 즈음 떨어진 곳에서 대학공부도 함께 병행했다. 지미는 "그 당시는 구단에 돈이 없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말대로 볼튼은 3부리그까지 강등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당시 볼튼의 감독은 3년 전 노팅엄 포레스트의 주장으로 유러피언 컵을 들어올린 주장이었던 존 맥거번이었는데, 맥거번 감독은 지미에게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헌신과 열정에 대해 통찰을 준 사람이었다. 맥거번은 마라톤에 참여하며 선수들의 주급을 대기 위한 돈을 모으고 있었고, 어려운 시기에 놓인 팀의 감독이 되었다. 피터 리드처럼 돈이 될 만한 선수들은 모두 팔려나갔다. 맥거번은 논리그의 경험 많은 선수들을 영입하며 스쿼드를 채웠는데, 개중에서 호리치 RMI에서 영입된 토니 캘드웰 같은 선수는 월솔을 상대로 다섯 골이나 터뜨리는 등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지미 필립스는 1987년, 7만 5천 파운드의 이적료로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당시 볼튼의 감독은 리버풀 역사상 가장 훌륭한 풀백이었던 필 닐이었다. 지미의 이적료는 볼튼의 반 년치 예산과 맞먹었다. 지미는 어느 목요일 저녁 감독의 차가 부모님 댁의 주차장에 있길래 자신이 뭘 잘못했나 싶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지미는 스물 한 살 선수였고, 에이전트는 없었다. 구단이 이적하라니 이적했던 간단한 일이었다. 도착한 글래스고 센트럴 역의 역장은 당시 레인저스의 감독이었던 그레이엄 수네즈가 끄는 재규어가 주차될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냇 필립스가 열 여덟살이 되었을 때, 볼튼 아카데미의 관리자로 있던 아버지가 해준 이러한 이야기들은 본인이 마주해야 한 냉정한 현실과 비견될만했을 것이다. 이적 금지 조치로 볼튼이 스쿼드에 새 선수를 등록할 수 없던 상황에서 팀에서 방출될 수밖에 없던 운명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이적당하게 된 아버지의 경험보다 더 나쁘거나 덜 나쁘다고 할 수 없었을 터이다.
그 시기 아들 필립스는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교로부터 합격장을 받았고 본인의 아버지가 그랬듯 고등학교 교육을 끝마쳤다. 그 무렵 리버풀의 아카데미 디렉터 알렉스 잉글소프는 전 볼튼 감독이자 현 리버풀의 스카우터인 앤디 오브라이언으로부터 필립스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클롭은 곧 필립스를 마음에 들어하게 되었고, 공중볼에 강점이 있는 점에서 자신의 선수 시절 모습을 떠올렸다. 리버풀의 코칭스태프는 필립스의 적극성과 빈틈없는 집중력, 수비 위치선정 능력을 높이 사고 있다. 피지컬이 워낙 두드러져서 그렇지 지능적인 위치선정이 없다면 필립스만큼 공중볼을 따내기란 어렵다.
지난 시즌, 필립스는 슈투트가르트에서 홀거 바트슈트버의 파트너로 리그 16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분데스리가 승격을 도왔다. 클롭은 보통 유스 선수들의 임대계약 과정을 직접 맡지 않지만, 본인이 응원하는 팀인 슈투트가르트가 리버풀과 비슷하게 수비라인을 운영한다고 생각했기에 이 임대 과정에는 조금 더 깊게 관여했다. 이전에 클롭과 도르트문트에서 함께 일했던 미슐린타트는 지난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팀은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필립스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필립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클롭의 선수"라는 칭찬과, 필립스가 수비수로서의 자질과 정신력, 팀 동료들과의 관계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며, 기회만 있다면 필립스를 다시 데려갈 것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슈투트가르트에서 1년을 보낸 필립스는 이제 독일어에 꽤 유창해졌다. 만약 돌아갈 일이 생긴다면 아주 잘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필립스는 작년 여름, 토트넘으로 떠난 조 로든을 대체할 스완지의 선수가 되지 못한 데에 아쉬워했지만 그 바로 다음날 멜우드에서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며 클롭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에는 필립스가 임대로든 완전이적이든 1월에 곧 팀을 떠나리라 예상했지만, 이제 리버풀은 센터백의 줄부상으로 그를 보낼 여유가 없어졌다. 이번 시즌이 끝나더라도 필립스에게는 2년의 계약 기간이 남는다. 만약, 필립스가 이번 시즌 마지막까지 예상 밖의 영웅으로 남는다면, 그는 앞으로의 커리어를 분명 적어도 챔피언십보다는 높은 레벨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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