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7. 12:30ㆍFootball
지난 4월 즈음 썼던 글. 이 글이 완성될 즈음에 각 클럽의 구단주들이 슈퍼리그에서 발을 빼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쉽게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디에고 마라도나는 생전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치인들과 거리낌 없이 관계를 맺고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혀 왔다. 아르헨티나 민중의 사랑을 받는 축구 영웅으로서의 마라도나와, 스스로를 아무 망설임 없이 '차비스타'라고 소개하며 우고 차베스를 열렬히 지지했던 마라도나는 별개의 사람이 아니다. 그가 ‘신’으로 추앙받을 수 있던 배경에는 한낱 공놀이 따위에 열광하는 수많은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고, 마라도나는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정치가 스포츠와 엄격히 분리되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의 그런 면모들을 불편해 했다. 마라도나를 동경하여 그의 후계자가 되고 싶어한 선수들을 한 시즌에 70경기씩 뛰게 하는 사람들이나, 축구를 보려고 낡은 브라운관 앞에 옹기종기 앉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폭탄을 떨어뜨리는 이들이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슈퍼리그에 유감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치킨을 뜯으며 넷플릭스로 더 높은 수준의 축구를 매일같이 볼 수 있다는 데 솔깃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슈퍼리그 이후의 축구는 내가 알던 축구가 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벽돌 공장에서 고향팀 복귀를 꿈꾸던 리키 램버트의 인간승리도 이제는 없다. 휴이튼의 슬럼에서 '살기 위해' 괴팍한 성격을 길러온 조이 바튼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도 이제는 없다. TV 중계에도 잡히지 않는 하부리그 클럽들이 컵대회 대진에서 빅클럽을 만나 좋아할 일도 이제는 없다. 슈퍼리그 이후의 축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지킬 철밥통 열네댓 팀과, 나머지 자리를 두고 피 터지게 경쟁을 벌여야 할 주변부 팀들과 뛰어난 선수들을 '조공'하게 될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축구 '시장'이 격하되는 것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피상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고, 누군가의 말처럼 '디비전 원'이 '프리미어쉽'으로 이름을 바꿨던 것처럼 별 탈 없을 수도 있다. 당연하다. 아무도 그 이면에 있는 그림자를 말하지 않을 테니까. '꿈의 팀'들이 벌일 '꿈의 리그'에 그런 낭만을 상상할 여유란 없다. 낭만이란 상상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실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신학자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을 통해, 근대 사회의 이면에 공공연히 놓여 있는, 그러나 그림자처럼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대가 없는 '노동'을 발견하고 고발한다. 교과서 읽듯 세계화는 하나의 트렌드이자 니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는 주장을 읊는 이들은, 또 그러면서도 불법 이민자를 막겠다며 멕시코와의 국경에 벽을 세우는 도널드 트럼프이 환호하는 이들은,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관세조약이 멕시코 농민 200만 명의 일자리를 뺏었다는 사실을 금방 잊거나 외면하려 들곤 한다. 별로 다르지 않다. 슈퍼리그가 가져올 - 그림판으로 오프사이드 라인을 긋는다든가, 허울뿐인 인종차별 반대 캠페인을 벌인다든가 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 대가들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까?
난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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