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4. 18:08ㆍFootball
지난 7월 18일 리버풀 출입기자 퀴바 오닐의 디애슬레틱 기고문. 한국에서는 '민감'하다고 여겨서인지 잘 언급되지 않는 이야기인데 누군가는 옮겨야만 할 것 같았다.
잘못된 가치에 의해서 누군가가 소외감을 느낀다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2021년 11월, 리버풀의 주장 조던 헨더슨이 사우스햄튼과의 경기를 앞두고 프로그램 노트에 남긴 글이다. 이 글귀는 영국의 성소수자 인권단체 '스톤월'이 주관하는 무지개 완장 캠페인에 대한 연대사였다. 원문은 900단어가 조금 넘을 정도로 길었고, 축구와 사회의 성소수자 문제의 기저를 관통하는 사려깊은 문장들이었다. 혐오와 차별에 맞서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시한 조던 헨더슨의 지지와 연대는 강력한 여운을 남겼다. 아니, 그렇게 여겨졌다.
지난 주, 헨더슨은 리버풀의 전 주장 스티븐 제라드가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에티파크로 이적하는 데 구두 합의했다. 그가 받을 주급은 70만 파운드(한화 11억 6천만 원) 규모로 알려졌고, 며칠 간의 협상 끝에 구단 간에도 1200만 파운드 규모의 이적료 합의가 이루어졌다. 헨더슨은 지난 수요일 카를루스에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명단 제외되었고 이적은 거의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이적 협상은 다소 지연됐지만 헨더슨은 동성애와 트렌스젠더가 불법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공연하게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는 사우디로의 이적을 아주 열정적으로 열망했다. 성소수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그는 이제 이들에 대해 냉담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것 같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나도 그렇다.
내가 세상에 어떤 위화감을 느끼고 있을 때 헨더슨의 언행은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헨더슨의 '진심'을 읽고 있으면 동성애자 여성으로서 내가 숨어야만 한다고 느꼈을 때, 벽장 밖으로 나가도 괜찮을 것만 같은 용기를 주었다.
오랫동안 나는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나 스스로에게도 나의 정체성을 숨기려고 노력해 왔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그것이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군지를 받아들이게 됐을 때 마침내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일이다.
이를테면 안필드를 보자. 리버풀의 홈 구장, 내가 항상 소속감을 느끼는 곳. 영원히 변하지 않을 소속감.
그럼에도 그곳에 애인을 데리고 갔을 때 손을 잡지는 못했다. 타인에게서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았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겠지만 이 분위기에 적응하길 바랐다. '우리'는 시선 뿐만이 아니라 댓글, 그리고 잠재적인 다른 나쁜 것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하곤 한다. 하다못해 영국에서도 그렇다. 사랑이 범죄가 되는 나라에서는 오죽할지 모르겠다. 모든 사람에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헨더슨은 이를 이해하는 사람 같았다. 프로그램 노트에서 언급한 '사회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숨겨야 한다는 불안감'이란 아마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는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며 '얼라이'가 되기로 약속했다. 안필드에서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까지, 나와 같은 사람들이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리라는 열망이었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그 어떤 성소수자에게도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은 안전한 일이 아니다. 헨더슨이 이적을 결심하며 이를 알았든 몰랐든 이는 도덕적 위선에 다름없고, 절망적으로 슬픈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만의 감정은 아니다. 헨더슨은 무지개 완장 캠페인 뿐만이 아니라,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NHS를 지원하기 위해 모든 프리미어 리그 선수들이 참여하는 #PlayersTogether 기금을 조직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정말로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믿었다.
누군가는 축구선수가 국가 하나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일 것이라고 냉소할 테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 1월 사우디아라비아 관광청이 다가오는 여자월드컵의 스폰서로 참여한다는 사실이 보도된 이후 많은 사람들의 반발이 있었고, 인판티노 회장은 한 단계 물러나는 태도를 보였다.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신념을 외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낼 때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된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가 보장받은 주급 수준이 프로축구 선수로서도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임을 말할 테다. 돌볼 가족이 있고 지원해야 할 자선단체가 있는 그에게 오일머니가 오히려 도움이 되리라는 주장일 테다. 사실 사우디로 이적하기로 결심한 리버풀 레전드로 헨더슨이 처음인 것도 아니다. 알 콰드시야의 감독이 된 로비 파울러, 헨더슨을 영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알 에티파크의 감독 스티븐 제라드, 알 아흘리와 계약한 호베르투 피르미누, 그리고 알 이티하드와 이적 협상 중인 파비뉴까지.
오피셜 동영상의 발표를 보며 매번 마음이 아팠다. 파울러는 리버풀 팬들에게는 '신'이었고, 피르미누는 클롭 시스템의 모범이었고, 파비뉴는 리버풀로 이적한 이후 리버풀이 거의 모든 대회에서 한 번씩 우승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제라드는 말할 것도 없다.
이 '편향'이 공평하다고, 또는 부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늘 자신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 높았던 헨더슨의 행동은 가장 상처가 됐다. 12년 동안 리버풀에 있었고, 팀의 전성기의 주장이었다. 그 모든 과정에서 헨더슨은 자신의 '연대'에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왔다. 스스로가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부모, 남편, 아들, 형제, 친구였던 사람. 그러나 이제 그 말에서 나는 더 이상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헨더슨이 사우디로 이적한다고 리버풀에서의 유산이 전부 더럽혀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곳에 가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 이적이 그들이 가져다 준 즐거운 순간들, 메달, 그리고 업적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환희를 함께 느꼈던 사람이 그들을 보고 실망하게 될 수는 있다.
그동안 지켜온 가치관이냐, 돈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헨더슨은 자신의 답을 내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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