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 Your Fate to the Wind

2021. 9. 28. 00:27Life

 

"내가 봐도 그렇군. 정말 그래.  우리 둘 사이에는 심연이 생긴 것 같군. 하지만 노라, 그 심연을 채울 수는 없을까?"
"지금 같은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아내가 아니에요."
"나는 변할 수 있어."
"그럴지도 모르지요. 인형을 빼앗기면 말이에요."
"당신과, 당신과 헤어지다니! 안 돼 노라, 안 돼,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어."
"그만큼 더 분명하게 그 일이 벌어질 거예요."
"노라, 노라, 지금은 안 돼! 내일까지 기다려요!"
"낯선 남자의 방에서 밤새 누워 있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남매처럼 살 수는 없을까?"
"그게 오래가지 않을 거란 건 당신도 잘 알죠. 토르발, 잘 있어요. 아이들은 보지 않겠어요.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잘 돌봐줄 거예요. 내가 이렇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에게 아무 도움이 안 돼요."
"하지만 노라, 언젠가는, 노라, 언젠가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데요."
"하지만 당신은 지금 모습으로도, 나중의 모습으로도 나의 아내야."
"토르발, 잘 들어요. 내가 지금 하는 것처럼 아내가 남편의 집을 떠나면 남편에게는 그 여자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들었어요. 어쨌건 나는 당신을 모든 책임에서 풀어 줄게요. 아무 데에도 매여 있다고 느낄 필요 없어요. 내가 아무 데에도 매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에요. 양쪽 모두가 온전히 자유로워야 해요. 봐요, 여기 당신 반지가 있어요. 내 반지를 줘요."
"이것까지?"
"그것까지요."
"여기 있소."
"좋아요. 이제 다 끝났어요. 여기 열쇠를 놓아두겠어요. 집안일은 하녀들이 잘 알아요. 나보다도 더 잘 알죠. 내가 떠난 다음, 내일 아침에 크리스티네가 와서, 친정에서 내가 가지고 온 내 물건을 챙길 거예요. 그건 내게 보내주었으면 해요."
"끝났어! 끝났다고! 노라, 다시는 내 생각을 하지 않을 거요?"
"물론 자주 당신과 아이들과 이 집 생각을 하겠죠."
"내가 편지를 써도 될까?"
"안 돼요. 절대로 안 돼요. 허락할 수 없어요."
"하지만 대신……."
"안 돼요. 아무것도 안 돼요."
"필요한 건 무엇이나 가지고 가요."
"아니라고 했어요. 나는 낯선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받지 않을 거예요."
"노라, 나는 당신에게 영원히 낯선 사람 이상이 될 수 없나?"
"아, 토르발, 그러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야 해요."
"어떤 놀라운 일인지 말해 봐!"
"당신과 나 모두가 변해서……. 아, 토르발, 나는 더 이상 기적을 믿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믿고 싶어. 말을 해요! 우리가 어떻게 변하면 될까?"
"우리가 함께 사는 생활이 진정한 결혼이 될 수 있다면 되겠죠. 잘 있어요."
"노라! 노라! 아무도 없군. 그녀는 이제 없어. 기적이라고?"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중

 

새내기 시절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턱대고 들었다가 된통 혼쭐난 페미니즘 문학 수업에서 처음 읽었던 작품이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이었다. 작품 속에서 노라는 남편 헬메르에게 '종달새'나 '다람쥐' 따위로 호명되며, 우체통을 열어볼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그 시대 보편의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모종의 사건들 속에서 노라는 실은 자신이 행복하지도 않고, 온전한 어머니로 대접받지 못함에도 거짓 행복연기를 강요받아 온 '인형'에 다름없었음을 깨닫는다. 더이상 인형이 아니게 된 노라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이제 하나 뿐이다. '인형의 집'을 박차고 나서는 것이다.

 

인형이 아닌 삶을 선택한 노라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상상의 영역에 있는 문제다. 집을 떠나온 노라 스스로도 헬메르에게 "내가 어떻게 될지는 전혀 모른다"고 시인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누군가는 바깥 세상의 노라가 또다른 누군가의 인형이 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지만 그닥 유쾌하지는 않다. 중요한 건 반쪽짜리 안온함을 포기하고 '운명을 바람에 내던진' 결심의 진의에 있을 테니까.

 

재즈는 내 취향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권해준 빈스 과랄디의 트랙을 듣다 생각이 여기까지 왔다. 이 곡에 셸비 플린트라는 아티스트가 따로 가사를 지어 붙혔는데 이 내용도 곱씹을 만 하다.

A month of nights, a year of days
Octobers drifting into Mays
You set your sail when the tide comes in
And you cast your fate to the wind

You shift your course along the breeze
Won't sail up wind on memories
The empty sky is your best friend
And you just cast your fate to the wind

That time has such a way of changing a man throughout the years
And now you're rearranging your life through all your tears
Alone, alone

There never was, there couldn't be
A place in time for men to be
Who'd drink the dark and laugh at day
And let their wildest dreams blow away

So now you're old, you're wise, you're smart
You're just a man with half a heart
You wonder how it might have been
Had you not cast your fate to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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